여의도의 빌딩 숲 위로 쏟아지는 비는 차가운 금속의 맛을 품고 있었다. 스물네 살의 한시우는 낡은 편의점 유니폼 위로 스며드는 한기를 느끼며 배달용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다. 부모가 남긴 빚 8억 원은 매달 이자만으로도 그의 숨통을 조여왔다. 톨킨이 묘사한 황폐한 모르도르가 있다면, 바로 이 화려한 마천루들의 그림자 아래일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때였다. 웅장한 증권사 본사 건물의 뒷골목, 쓰레기 더미 틈에 쓰러져 있는 노인을 발견한 것은. 시우는 본능적으로 자전거를 멈췄다. 노인의 손에는 흙먼지 묻은 작은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시우가 다가가자 노인은 힘겹게 눈을 뜨며 속삭였다.
“자네… 돈의 소리가 들리는가?”
노인이 건넨 것은 녹슨 구리 동전 하나였다. 그러나 시우의 손에 닿는 순간, 동전은 롤링의 마법 지팡이가 깨어나듯 은은한 금빛 진동을 내뿜기 시작했다. 오직 시우의 눈에만 보이는 황금빛 선들이 빌딩의 벽면을 타고 거대한 혈맥처럼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김용의 소설 속 주인공이 기연을 만나 내공의 흐름을 보게 된 것과 같았다. 시우는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한 동전이 아니었다. 전 세계의 자본이 어디로 흐르고 어디서 썩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자본의 지도’였다.
“이것을 가져가게. 그리고 기억하게… 자본은 생명이며, 그 생명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다스린다.”
노인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지만, 시우의 눈앞에는 이제껏 본 적 없는 찬란한 1조 원의 길이 열리고 있었다. 가난이라는 이름의 불우한 유년기가 끝나고, ‘자본의 황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