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지하 단칸방의 공기는 습기와 곰팡이 냄새로 무거웠다. 한시우는 젖은 옷을 벗어 던질 생각도 못한 채, 책상 위에 놓인 녹슨 구리 동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밖에서는 여전히 장대비가 창살을 때리고 있었지만, 시우의 귓가에는 그보다 훨씬 거대하고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심장 박동 소리였다. 거대한 도시, 여의도의 지하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자본의 박동이었다.
김용의 무협지 속 주인공이 전설적인 영물을 먹고 환골탈태(換骨奪胎)하듯, 시우의 감각은 완전히 재편되고 있었다. 동전에서 뻗어 나온 미세한 황금색 실들이 그의 지문 속으로 파고들더니, 이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눈을 감아도 보였다. 낡은 벽 너머, 콘크리트 바닥 아래에 거대한 에너지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신용이었고, 누군가의 절망이었으며, 또 누군가의 탐욕이 응축된 ‘돈’이라는 이름의 마나(Mana)였다.
“이것이… 자본의 실체인가.”
시우는 떨리는 손으로 동전을 다시 쥐었다. 순간, 톨킨의 절대반지가 주인의 영혼을 잠식하듯 서늘한 무게감이 느껴졌지만, 그 안에는 롤링이 묘사한 마법의 세계보다 더 경이로운 진실이 담겨 있었다. 시우의 눈앞에 투사된 홀로그램 같은 수치들—그것은 단순한 주가 지수가 아니었다. 각 기업의 생명력, 정치권의 야욕, 그리고 대중의 공포가 실시간으로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하학적 문양이었다.
그는 창밖의 마천루들을 보았다. 낮에는 그저 경외의 대상이었던 그 거대한 탑들이, 이제는 단지 에너지가 모이는 거점에 불과해 보였다. 어느 건물의 혈맥이 막혔는지, 어느 재벌가의 금고가 비어가고 있는지, 그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8억 원의 빚? 그것은 이제 이 거대한 체스판 위의 작은 먼지처럼 느껴졌다. 황제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한 번의 정확한 ‘칼질’뿐이었다.
시우는 책상 구석에 놓인 낡은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에는 빨간색과 파란색이 어지럽게 뒤섞인 HTS(홈트레이딩시스템) 창이 떴다. 평소라면 두려움에 손을 떨었겠지만, 지금 그의 눈에는 그 혼돈 속에 숨겨진 완벽한 질서가 보였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인 42만 원을 로그인을 했다. 남들에겐 밥값에 불과할지 모르나, 황금의 눈을 뜬 그에게 이것은 1조 원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첫 번째 벽돌이었다. 빗소리는 어느덧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서곡으로 바뀌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