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가운 강바람이 여의도의 마천루 사이를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한시우는 낡은 외투 깃을 세우며, 500만 원이라는 무거운 행운을 품에 안은 채 어둠 속을 걸었다.
그것은 단순한 화폐의 뭉치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눈물이고, 누군가의 야망이며, 대지에 뿌리 내리지 못한 유령들의 비명이었다.
시우의 ‘황금의 눈’에는 그것이 거대한 황금색 강물이 되어 빌딩 숲 사이를 도도하게 흐르는 것이 보였다.
“돈이란, 영혼이 없는 자들에게는 사슬이나, 의지가 있는 자에게는 날개가 된다.”
그는 문득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읽어주던 고전 소설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자본은 문학보다 더 시적이었고, 그 잔인함은 서사시의 비극보다 깊었다.
그때, 은은한 서향(書香)이 바람을 타고 전해졌다.
증권가 한복판, 어울리지 않는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글의 집(House of Letters)’.
자본가들이 은밀하게 시를 낭송하고 고전의 지혜를 빌려 투자를 결정한다는 전설적인 살롱이었다.
시우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만 권의 고서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서재의 끝, 촛불이 일렁이는 테이블 앞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마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요정의 그것처럼 깊고 신비로웠다.
“새로운 운명이 발을 들였군요.”
그녀가 책장을 넘기며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거문고 줄을 울리는 듯 맑았다.
시우의 눈에 비친 그녀의 주변은 단순한 오라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조 원의 자본이 응집되어 만들어진, 거대한 ‘신화적 중력’이었다.
그녀는 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본 그 자체이자, 문학이 현실로 구현된 존재였다.
시우는 깨달았다.
자신이 휘두르는 황금의 눈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의 옹알이에 불과했음을.
“당신의 500만 원은, 이 거대한 서사시의 첫 번째 단어에 불과합니다. 한시우 씨.”
그녀가 시우의 이름을 불렀을 때, 시우의 심장은 마치 드래곤의 고동처럼 크게 요동쳤다.
사랑일까, 아니면 파멸의 전조일까.
확실한 것은, 여의도의 밤이 그를 전설의 무대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