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시장의 가장 후미진 골목, 낡은 천막 아래에서 비릿한 생선 냄새와 녹슨 철근의 향기가 뒤섞여 있었다. 한시우는 서린이 일러준 좌표를 따라 이곳에 멈춰 섰다.
그곳엔 다 해진 누더기를 걸친 노인이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길바닥에 흩어진 폐지 위에 분필로 알 수 없는 기호들을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고물상 노인이었으나, 시우의 눈에는 그 기호들이 살아 움직이는 ‘자본의 룬 문자’로 보였다.
“여의도의 금칠한 의자보다, 이곳의 흙바닥이 돈의 흐름을 더 잘 말해줄 때가 있지.”
노인이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톨킨의 엔트처럼 느릿했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대륙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노인의 이름은 ‘공야(空夜)’. 과거 전 세계 헤지펀드를 벌벌 떨게 했던 전설적인 공매도 세력의 수장이자, 자본의 강호에서 파문당한 ‘그림자 황제’였다.
그림 1: 노인의 발밑에 펼쳐진 차트의 산맥, 자본의 험로(險路)
시우는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김용의 소설 속 소년 영웅이 무림의 기인을 만났을 때처럼,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투기를 느꼈다.
“어르신, 저는 1조의 성(城)을 쌓으려 합니다. 그 기초를 다지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노인은 그제야 분필을 내려놓고 시우를 쳐다보았다. 그의 한쪽 눈은 먼 옛날 하이퍼인플레이션의 폭풍 속에서 잃어버린 듯 탁했으나, 다른 한쪽 눈은 다이아몬드보다 날카롭게 빛났다. 조앤 롤링의 미스테리한 마법 도구처럼, 그 눈은 시우의 영혼 속에 숨겨진 ‘자본의 그릇’을 꿰뚫어 보았다.
“1조라…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낙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지옥의 입구지. 자네, M&A(인수합병)의 진정한 의미를 아나?”
시우가 답하려 하자, 노인이 가볍게 손을 저었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 ‘영혼의 결합’이네. 타인의 욕망을 내 안으로 흡수하여 더 거대한 존재로 진화하는 연금술이지. 오늘부터 자네에게 ‘천라지망(天羅地網) 기업 사냥술’을 전수하겠네.”
시우의 손끝에 다시 황금빛 진동이 일었다. 노인이 폐지 위에 갈겨쓴 기호들이 시우의 뇌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것은 복잡한 재무제표의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탐욕과 공포를 읽어내는 ‘심안(心眼)’이었다.
사랑이 연인들의 영혼을 묶듯, 자본은 기업들의 운명을 묶는다. 시우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걷고 있는 이 길은 단순히 부자가 되는 길이 아니라, 세상의 문학적 서사를 다시 쓰는 작가의 길과 같다는 것을.
밤공기가 차가워졌지만, 시우의 심장은 1조 원의 금화가 부딪히는 소리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강호의 전설이 그에게 문을 열어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