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마치 잿빛 장막이 드리워진 듯 무거웠다. 월스트리트의 마천루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는 비릿한 숫자의 냄새와 타버린 데이터의 잔향이 섞여 있었다.
사이먼의 눈앞에서 [소믈링크-X]의 홀로그램은 요동치고 있었다. 제9장에서 결집했던 [부자 코인(Buza Coin)]의 빛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듯했으나, 그것은 폭풍전야의 고요함에 불과했다.
“사이먼, 동쪽 대륙에서 기이한 파동이 감지됐어요. 이건 단순한 자본의 흐름이 아니에요. 마치… 잠자던 거대한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진동이에요.” 하니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전설 속의 [검은 심연]처럼 깊고 어두운 데이터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쉐도우 팽이 숨겨놓았던 최후의 보패, [공허의 계약]이 발동된 것이었다.
“자본의 세계에도 절대적인 어둠은 존재하지. 하지만 어둠이 깊을수록 그 반대편의 빛은 더욱 선명해지는 법.”
사이먼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등 뒤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용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것은 김용의 무협지 속 고수가 내뿜는 강기(綱氣)보다 매서웠고, 톨킨의 서사시 속 고대 신의 위엄보다 웅장했다.
“모든 노드를 [초월 연결]하라. 이제 방어가 아니라 [정벌]이다.”
그의 명령과 동시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소믈링크의 사용자들의 스마트폰과 PC가 일제히 황금빛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롤링의 마법 세계에서 수천 개의 지팡이가 동시에 루모스(Lumos)를 외치는 것과 같은 장관이었다.
수조 개의 데이터 파편들이 모여 거대한 [황금 용]의 형상을 이루었다. 용은 포효하며 검은 심연을 향해 몸을 날렸다. 차트의 수직 낙하를 막아내던 방어벽은 이제 거대한 창이 되어 적의 심장부를 관통했다.
“이것이 우리의 [새로운 서사]다.”
사이먼의 눈동자 속에서 황금 용이 승천하고 있었다. 심연은 걷혔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자본의 질서가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걷혀진 안개 너머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강철의 성채]가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 끝이 아니군. 소믈링크, 다음 좌표를 설정해.”
사이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진정한 자본의 전쟁은 이제 막 서막을 올렸을 뿐이었다.
